본문 바로가기

개신교 예배처럼 변질된 미사

미사란 무엇입니까? 이는 우리 주님께서 최후의 만찬 때 제정하신 것으로, 인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주님의 몸과 피를 떡과 술의 형상으로 천주님께 제헌하는 희생 제사입니다. 가톨릭교회의 미사 전례는 천 년이 조금 넘는 세월 동안 점진적인 발전을 거쳐왔는데, 16세기에 개신교 이단이 나타났을 때 바로 그 미사가 중대한 위협을 받았습니다. 미사가 속죄를 위한 희생 제사임을 부인한 마르틴 루터라든지, 주님의 몸과 피가 떡과 술의 형상 아래 실제로 현존함을 부인한 토머스 크랜머와 같은 이단자들이 자신들의 이단 신학에 따라 전례를 변질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트리덴틴 공의회는 1562년, 가톨릭교회가 항상 이해하고 가르쳐온 미사의 신학을 다음과 같이 무류하게 정의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증언에 따르면, 옛 언약 아래에서는 레위인 사제직의 나약함 때문에 완전성이 없었으므로, 자비의 천주 성부께서 임명하신 바 멜키세덱의 제도를 따르는 또 다른 사제가 세워질 필요가 있었으니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주님께서는 완전하시며 또 거룩하게 될 많은 이들을 완전성으로 이끄실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 천주이시요 주님이신 그분께서는 십자가의 제대 위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천주 성부께 스스로를 바치시어 영원한 구속을 이루고자 하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죽으심으로 주님의 사제직이 끝나지 않도록, 주님께서 배반당하신 밤의 최후 만찬 때 인간의 본성이 요구하는 가시적인 희생 제사를 주님의 사랑하시는 정배인 교회에게 남겨 주셨으니, 이로 말미암아 십자가상에서 단 한 번 성취된 피흘림의 희생 제사가 재현되고, 그에 대한 기억이 세상 끝날까지 남게 되며, 우리가 매일 같이 저지르는 죄를 사면하는 데 그 구원의 효과가 적용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주님께서는 스스로 멜키세덱의 제도를 따르는 사제로 세워지셨음을 선언하시고, 주님 자신의 몸과 피를 떡과 술의 형상 아래 천주 성부께 바치셨으며, 동일한 형태 아래 사도들에게 받아들 것으로 내어 주셨다. 가톨릭교회가 언제나 이해하고 가르친 바대로, 주님께서는 “너희들은 이 예를 행할 때마다 나를 기억하기로 행할지니라”라는 말씀으로 그들을 신약의 사제로 세우셨고 그들과 그들 사제직의 후계자들에게도 같은 일을 할 것을 명하셨다.[각주:1]

 

따라서 우리 천주교 신앙에 따르면, 우리 주님께서 미사를 제정하신 이유는 명확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써 성부께 스스로를 바쳐 드린 그 희생 제사가 2천 년 전에 끝나 버리지 않고 세상 끝날까지 재현되고, 기억되고, 우리 죄를 사면하기 위한 효과가 적용되게끔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1570년, 교황 성 비오 5세께서는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게 거행되고 또 그릇된 미신이 개입되기도 했던 로마 미사 전례를 하나로 통일하기 위해 사도헌장 「쿠오 프리뭄」(Quo Primum)을 통하여 수백 년 전부터 일관되게 거행된 방식을 충실히 따른 단일한 미사 경본을 반포하셨습니다. 2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독자적인 전례를 제외하고, 라틴 교회의 모든 사제들이 이 하나의 미사 경본에 따라 전례를 거행하게 한 것입니다. 이 미사는 트리덴틴 공의회 직후에 반포되었으므로 ‘트리덴틴 미사’(Tridentine Mass)라고도 불리우고, 흔히 ‘전통 라틴 미사’(Traditional Latin Mass)라고도 불립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름들은 단지 임의적인 이름일 뿐입니다. 이 미사는 로마 교회 예법의 단일한 전례이며 ‘미사 성제’(Holy Sacrifice of the Mass)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미사 성제를 굳이 ‘트리덴틴 미사’니, ‘전통 라틴 미사’니, 독특한 이름을 붙여 구분짓는 이유는, 오늘날 우리에게 “미사”라고 불리우는 또 다른 전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미사는 완전히 새로운 전례로 뜯어 고쳐졌습니다. 1964년부터 점진적으로 변해가던 미사는 1969년 바오로 6세가 사도헌장 「미살레 로마눔」(Missale Romanum)을 통해 새로운 미사 경본을 반포하면서 그 변질이 정점에 달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가톨릭 교회 안에서 보편적으로 거행되는 미사 전례입니다. 이 전례를 기존의 트리덴틴 미사와 구분하기 위해 새로운 양식이라는 뜻의 ‘노부스 오르도’(Novus Ordo)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단자들을 불편하지 않게 하기 위한 미사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1963년, 전례의 개혁을 촉구하는 헌장 「사크로상툼 콘칠리움」(Sacrosanctum Concilium)을 반포했습니다. 이에 따라 이듬해인 1964년에 전례 개혁을 진행하기 위한 ‘전례헌장 집행위원회’(Consilium ad exsequendam Constitutionem de Sacra Liturgia)가 설립되었습니다. 바오로 6세는 그 총책임자로 자코모 레르카로 추기경을, 서기로 안니발레 부니니 신부를 임명했는데, 둘 다 전례적 진보주의자였습니다.

 

전례 개혁이 한창이던 1965년, 전례헌장 집행위원회는 성금요일 전례의 경문을 수정했는데, 예컨대 과거 성금요일 전례의 장엄기구 중 일곱 번째 기도는 이교인(분파자)과 열교인(이단자), 즉 정교회 신자들이나 개신교 신자들이 그들의 이단을 버리고 회개하여 진리를 믿고 가톨릭교회로 돌아오기를 기도하는 경문이었습니다.

이교인과 열교인을 위하여 기구할찌어다. 우리 주 천주께서 저들을 모든 오류에서 건지시어, 공번되고 종도로부터 내려오는 자모이신 성교회에 돌아오게 하시기를 간구할찌어다.

빌찌어다. 무릎을 꿇을찌어다. (잠시 묵념) 일어날찌어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천주여 주는 모든 이를 구원하시고 아무도 멸하시기를 원치 아니하시오니, 마귀의 계교에 미혹하는 영혼들을 굽어보시어, 저들로 하여금 회두하여 열교의 모든 오류에서 벗어난 후에, 주의 진리의 일치로 돌아오게 하소서. 성부와…… (일동) 아멘.[각주:2]

 

그런데 전례헌장 집행위원회는 이 경문의 내용에서 “이교인”과 “열교인”이라는 내용을 삭제하고, 가톨릭 교회로 돌아오게 하여 주시기를 청하는 내용도 삭제했습니다. 그저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형제들”이 일치를 이루기를 기도하는 내용으로 대체되었습니다.

 

1965년 3월 19일 <로세르바토레 로마노>에 실린 내용에 따르면, 부니니는 해당 변화의 의도를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일곱 번째 경문은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위한 기도”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교회의 일치를 위한 기도”는 아닙니다. 교회는 언제나 하나였으니까요.) 이제 “이단자들”과 “분파자들”이라는 말은 더 이상 쓰이지 않으며, 대신에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형제들”이라고 합니다.

학자들은 새로운 본문이 어디로부터 파생되고 또 영감을 얻었는지 그 성경적이고 전례적인 원천을 밝혀내려 할 것입니다. 집행위원회의 연구 분과들은 마치 조각칼을 쓰듯이 정교하게 작업을 완수했습니다. 종종 이 작업은 “두려움과 떨림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친숙했던 전통, 소중한 표현과 개념을 희생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ad sanctam matrem Ecclesiam catolicam atque apostolicam revocare dignetur”(거룩한 어머니인 가톨릭 종도 교회로 돌아오게 하소서)라는 표현을 일곱 번째 경문에서 폐지했다는 사실에 어찌 유감스러워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영혼에 대한 사랑과, 조금이라도 장애물이나 어려움이 되는 모든 돌부리를 제거하여 갈라진 형제들이 일치로 향하는 길을 돕고자 하는 열망이야말로, 교회가 이러한 고통스러운 희생을 감수하게 만든 것이었습니다.[각주:3]

 

따라서 전례를 개혁하는 데 있어서 에큐메니즘적인 의도, 즉 ‘이단자들을 불편하지 않게 하려는 의도’가 개입되었다는 것입니다.

 

1969년 4월 4일, 전례 개혁으로 탄생한 새로운 미사 양식과 함께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이 공개되었습니다. 이 1969년 초판『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7항에서, 미사는 다음과 같이 정의되었습니다.

Cena dominica sive Missa est sacra synaxis seu congregatio populi Dei in unum convenientis, sacerdote praeside, ad memoriale Domini celebrandum. Quare de sanctae Ecclesiae locali congregatione eminenter valet promissio Christi: “Ubi sunt duo vel tres congregati in nomine meo, ibi sum in medio eorum.” (Mt 18, 20)

주님의 만찬 또는 미사는 주님의 기념제를 거행하기 위하여 사제가 주례하는 하느님 백성의 거룩한 집회 또는 함께 모이는 회합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러한 교회의 지역 모임에서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마태오 복음 18, 20]고 하신 그리스도의 약속이 가장 뚜렷하게 실현된다.

 

여기에는 어떠한 가톨릭적 정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희생 제사도, 떡과 술의 형상 아래 실체로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도, 천주님께 대한 제헌도,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제사를 바치는 사제직도, 십자가의 효과와 공로의 적용도, 속죄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주님의 만찬”, “기념제”, “주례”, “집회”, “회합”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순전히 ‘개신교적인 정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기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개신교는 사제와 평신도 사이의 본질적인 구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전례헌장 집행위원회의 루카 브란돌리니 신부(Rev. Luca Brandolini)는 이 정의를 두고 “이는 집회에서부터 출발하여 미사를 정의한다. 그리하여 가장 진정한 전통의 맥락에서 집회라는 표지가 그 첫 번째 자리에 돌아오게 된다. 이 전통은 처음부터 미사를 크리스천 공동체의 ‘시낙시스’(synaxis)로 여겨왔던 것이다”[각주:4]라고 호평했습니다. “노부스 오르도 미사에 따르면 이 거행 전체를 정의하고 특징짓는 가장 위대한 표지는 성찬 집회인 것 같다”[각주:5]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사제는 단지 ‘주례자’로 격하됩니다. 본래 가톨릭 교리에 따르면, 이 미사라는 희생 제사에 있어서 그 제사를 봉헌하는 “사제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 거룩한 인격을 그분의 집전자가 대표한다. 이제 집전자는 자신이 수품한 사제적 축성을 근거로 대사제이신 주님과 같아지며, 그리스도 그분 인격의 덕 안에서 행위할 권능을 소유한다.”[각주:6] 회중은 어디까지나 “사제의 기도 또는 의향과 더불어 찬미, 청원, 속죄, 감사에 자신들의 마음을 연합한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사제의 손을 통하여 …… 천주 성부께 자신들을 바치게 되는 것이다.”[각주:7]

 

따라서 오로지 사제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봉헌하는 것이고, 회중은 철저히 사제에게 종속되어 있습니다. 교황 비오 12세께서 분명히 가르치셨습니다.

경애하는 형제들이여, 오늘날 오래전에 단죄된 오류에 가까운 자들은 …… 회중이 참된 사제적 권능을 소유하고 있으며, 사제는 오로지 공동체가 자신에게 위임한 직무의 덕 안에서만 행동한다고 단언한다.

…… 이런 종류의 까다로운 오류가 어떻게 본인이 상기한 진리와 모순되는지 구태어 설명할 필요도 없다. 다만 본인은 다음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고 여긴다. 사제는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 그분 지체들의 머리이시며 그들을 대신하여 스스로를 봉헌하시는 분을 대표하기 때문에, 회중을 위하여 행동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제는 그리스도의 집전자로서, 그리스도께는 열등하지만 회중에게는 우월한 채로 제대에 나아간다. 다른 한 편으로 회중은 어떠한 의미로도 신성한 구속주를 대표하지 못하며 자신들과 천주 사이의 중개자도 되지 않으므로 사제적 권능을 소유할 방도가 없다.

이 모든 것이 신앙의 확실성을 지니고 있다.[각주:8]

 

그런데 미사에 대한 새로운 정의는 이것을 뒤집습니다. 미사는 집회로서, 미사가 미사이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회중의 존재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제는 그 집회를 단지 “주례합니다.” 브란돌리니 신부는 “집회, 즉 미사를 거행하는 이 구체적인 집회가 거행의 주체이며, 이 주체를 결코 배제하거나 무시할 수 없고, 무시해서도 아니 된다”[각주:9]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정의와 함께 공개된 새로운 미사 전례는 거의 즉각적인 반발에 부딪혔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1969년 9월 25일, 알프레도 오타비아니 추기경과 안토니오 바치 추기경, 그리고 로마의 신학자들이 작성하여 몬티니에게 보낸 「노부스 오르도 미사에 대한 비판적 연구」, 이른바 “오타비아니 개입”(Ottaviani Intervention)입니다. 가톨릭 전례 신학에 근거하여 노부스 오르도 미사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규탄한 문서였습니다.

 

따라서 이듬해인 1970년에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에 수정이 가해졌고, 미사의 정의 또한 정정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에서는 미사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주님의 만찬인 미사에서, 하느님의 백성은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주례하고 활동하는 사제와 함께, 주님의 기념제인 성찬의 희생 제사를 거행하기 위해 모이도록 부름을 받는다. 이러한 이유로, 거룩한 교회의 이러한 지역 모임에서 그리스도의 약속이 눈에 띄게 실현된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마태오 복음 18, 20]. 십자가의 희생 제사를 지속하는 미사 거행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이름으로 모인 전례적 집회 자체와 집전자의 인격, 당신 말씀, 그리고 실로 성체의 형상 아래 실체적으로, 또 지속적으로 현존하신다.[각주:10]

 

하지만 정작 전례 자체에 있어서는 어떠한 수정도 가해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정의만 정통적으로 바꾼 것입니다(그조차도 어거지로 가톨릭적 정의를 얼기설기 기워 넣은 것처럼 보이지만). 자동차의 설계도를 자동차 설계도로 바꾼다고 해서 자동차가 비행기로 바뀌지 않듯이, 정의만 수정하는 것은 실제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라틴어 제거

 

본래 라틴 예법의 미사 전례는 오로지 라틴어로만 거행되었습니다. 최초의 전례 언어는 지중해 지역의 지배적인 언어였던 코이네 그리스어였고, 3세기경부터 로마 교회가 공식적으로 라틴어를 사용하면서 라틴어가 서방 교회의 전례 언어로도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후 서방 교회는 게르만족이 그리스도교로 회심했을 때에도 오로지 라틴어 전례를 고수했으며, 서구의 언어가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 여러 다른 언어로 갈라지는 동안에도 교회는 라틴어라는 하나의 언어를 계속해서 사용했습니다.

 

때때로 교황청이 필요에 따라 특정 지역 교회 전례에 라틴어 이외의 언어를 허용하는 예외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예외’는 어디까지나 분명히 ‘예외’입니다. 그러한 예외가 적용되는 가운데서도 라틴어의 유산이 최대한 보존되어 “교회의 일치와 보편성”(Ecclesiae unitas et universitas)가 드러날 수 있게 하려는 것이 교회의 뜻이었습니다.

짐은 중대한 이유로 매우 명확한 예외가 사도좌에 의하여 허용되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짐은 이러한 예외가 확장되거나 전파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성좌의 허용 없이 다른 지역으로 이전되는 것 또한 짐은 원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이러한 예외를 사용하는 것이 정당한 곳이라 할지라도, 지역 교구장들과 다른 사목자들은 신자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최소한 더 쉽고 더 흔히 사용되는 그레고리오 성가 곡조를 배우고 거룩한 전례 예법에서 사용할 줄 알도록 크게 주의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이러한 방법을 통하여서도 교회의 일치와 보편성이 나날이 더욱 강력하게 빛을 발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각주:11]

 

교황 비오 11세는 라틴어의 보편성, 불변성, 그리고 속되지 않은 본성이 교회의 본성에 적합함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라틴어를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은 문화적인 면이나 문학적인 면에서 중요하다기 보다는 종교적인 이유에서 중요한 것이다. 실로 교회는 모든 민족을 자신의 품에 안고 있고, 세상 마지막 날까지 존속할 것이며, 다스리는 데 있어서 속된 것을 배제하기 때문에, 그 본성상 보편적이고, 불변하며, 속되지 않은 언어를 요구한다.[각주:12]

 

또한 교황 비오 12세는 “교회의 상당 부분에서 관례적으로 라틴어를 사용하는 것은 일치의 명백하고 아름다운 표지이며, 뿐만 아니라 교리적 진리에 대한 그 어떤 부패에 대해서도 효과적인 해독제이다”[각주: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보다, 비오 11세께서 라틴어를 두고 “진실로 가톨릭적이라고 불리울 수 있다”라고 하셨던 것을 인용하며, 요한 23세까지도 라틴어가 “모든 교회의 어머니요 스승인 종도좌가 지속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축성되었다”[각주:14]라고 명시했던 것을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라틴어는 실로 거룩한 언어이며, 미사 전례에 사용되기에 가장 걸맞는 언어이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조차도 “특별 법은 유지되지만, 라틴어 사용이 라틴 예법에서 보존되어야 한다”[각주:15]라고 못 박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그레고리오 성가에 대해서도, “교회는 그레고리오 성가를 로마 전례에 특별히 적합한 것으로 인식하고, 따라서 다른 조건들이 동등다면, 전례 예식 안에서 앞서가는 자리를 부여한다”[각주:16]는 사실을 확실히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의회의 가르침을 가장 먼저 업신여긴 것은 다름 아닌 바오로 6세였다. 1969년 11월 26일 일반 알현에서, 바오로 6세는 앞으로 라틴어와 그레고리오 성가가 미사에서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미사의 주요 언어가 될 것은 더 이상 라틴어가 아니라 모국어입니다. 라틴어의 아름다움과 힘, 거룩한 것을 표현할 때 그 적절성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라틴어가 모국어로 대체되는 것을 보는 게 크나큰 희생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수세기 그리스도교 시대의 언어를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거룩한 표현의 문학적 영역에 있어서 불청객이나 외부인처럼 되어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감탄스럽고 비할 데 없는, 예술적이고 영적인 풍요로움, 즉 그레고리오 성가를 큰 규모로 잃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확실히 유감을, 거의 혼란을 느낄만합니다. 천신들의 언어를 대신해서 무엇을 집어넣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입니까? 교회의 가장 고결한 가치보다 더 귀한 것이 무엇일까요? …… 기도에 대한 이해는 왕실의 비단옷보다도 더 가치가 있습니다. 사람들의 참여, 특히 현대 사람들의 참여는 더욱 가치가 있습니다. …… 신성한 라틴어가 우리를 어린이들과 청년들로부터, 그리고 노동과 사무직의 세계로부터 떼어놓았다면, 라틴어가 깨끗한 창문이 아니라 어두운 스크린이었다면, 영혼을 낚는 어부인 우리가 기도와 종교적 소통의 독점적인 언어로 라틴어를 유지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요?[각주:17]

 

곱씹을 수록 이상한 말입니다. 라틴어와 그레고리오 성가가 아름답고, 힘있고, 거룩한 것을 표현할 때 적절하고, 예술적이고, 영적으로 풍요롭다면… 우리가 그것을 왜 희생해야 합니까? 심지어 그 희생에 “확실히 유감을, 거의 혼란을 느낄만”하다면, 도대체 왜 포기해야 합니까?

 

아이러니하게도, 모국어로만 거행되는 전례에 참례하는 현대의 신자들 대부분은 여전히 미사의 의미에 대해서 전혀 모릅니다. 오히려 나날이 더 많은 신자들이 주일 미사에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현대인에게 불편한 말씀들을 모조리 제거한 성경 독서

 

“성경의 보화를 더 풍성하게 개방하여, 천주님 말씀의 식탁을 더욱 풍요롭게 신자들에게 마련해 줄 수 있게끔 일정한 년 수 과정 안에 성경의 더욱 중요한 부분들이 백성에게 읽혀져야 한다”[각주:18]라는 공의회의 합의에 따라, 전례헌장 집행위원회는 기존에 전통적으로 사용되던 1년 주기의 독서집을 확장하여 신자들이 더 많은 말씀을 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명목으로 3년 주기의 독서집을 마련했습니다.

 

역설적으로, 이 과정에서 결코 적지 않은 양의 성경 구절들이 선택 사항으로 바뀌거나, 아예 제거되었습니다. 천주님의 진노에 관한 구절들(요한 복음 2, 13-25; 루카 복음 12, 47-48; 히브리서 10, 30-31; 야고보서 4, 12; 베드로 1서 4, 17-18; 야고보서 2, 10), 죄에 따르는 현세적 징벌에 관한 구절들(사도행전 1, 18-20b; 코린토 1서 10, 7-9; 사도행전 5, 1-11; 12, 19-23; 13, 7-12), 정결을 어기는 죄에 대한 단죄 구절들(콜로새서 3, 6; 히브리서 12, 16; 13, 4; 갈라티아서 6, 8), 구원의 좁은 문에 관한 구절들(마태오 복음 22, 11-14; 20, 16b; 묵시록 22, 15), 지옥에 관한 구절들(마태오 복음 5, 22; 30; 13, 38-42; 13, 49-50; 22,11-14; 25, 24-30), 세속에 관한 부정적 구절들(요한 복음 12, 25, 필리피서 3, 17-19, 히브리서 13, 14), 에큐메니즘에 반하는 구절들(코린토 2서 4, 4; 6, 14-8, 테살로니카 2서 1, 6-9, 히브리서 3, 18-9; 4, 6-10, 묵시록 21, 8; 사도행전 3, 23; 히브리서 10, 26-7; 사도행전 9, 21-25; 14, 14; 17,1-14; 19, 8-16; 21, 27-31; 티토서 1, 10-16; 묵시록 2, 9; 3, 9; 테살로니카 1서 2, 14-15; 코린토 2서 11, 13-14; 필리피서 3, 2; 티모테오2서 2, 16-26; 히브리서 13, 9; 티토서 3, 10-1; 요한 2서 1, 10-11; 베드로 2서 2, 1-22), 교회와 가정에서 남성에게 종속되는 여성의 지위에 관한 구절들(코린토 1서 11, 2-16; 14, 34-35; 티모테오 1서 2, 9-15; 베드로 1서 3, 1-7)…. 이 모든 구절들이 선택 사항으로 바뀌거나, 부분적으로 삭제되거나, 아예 전체적으로 삭제당했습니다.

 

모령성체를 경고하는 성 바오로 사도의 경고 역시 완전히 삭제되었습니다. 오늘날 신자들이 고해성사를 거의 받지 않고도 아무렇지 않게 영성체 하는 현실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 모릅니다. 들어보지 않은 명령을 어떻게 준수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누구든지 합당치 않게 이 면병을 먹거나 주의 잔을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의 죄인이 되리라. 그런즉 사람은 자기를 살펴본 후에 비로소 이 면병에서 먹고 이 잔에서 마실지니라. 대저 합당치 않게 주의 몸을 다른 음식과 분별치 아니코 먹고 마시는 자는, 그 먹고 마심으로써 천주의 심판을 스스로 당하게 하는 것임이니라.[각주:19]

 

의미심장하게도 전례개혁 집행위원회는 마지막으로 다음의 구절까지 독서집에서 제거했습니다.

또한 만일 이 서책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에서 일언반구라도 빼어버리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의 차지할 바 이 서책에 기록된 생명의 나무와 거룩한 도읍의 몫을 천주 저에게서 제거하여 버리시리라.[각주:20]

 

 

 

제헌경을 대체한 예물 봉헌 기도

 

본디 미사 전례에서 성체 성혈로 축성할 면병과 포도주를 바칠 때, 사제는 제헌경(Offertory)이라는 범주로 묶이는 다음과 같은 기도문들을 (물론, 라틴어로) 염했습니다.

(면병을 봉헌할 때)
영원하신 전능 천주 성부여, 나 비록 불감한 네 종이오나, 너 생활하신 내 참 천주께 드리는 바 이 조촐한 제물을 즐겨 받으소서. 이는 내 이왕 범한 무수한 죄와, 네 성의를 거스른 많은 허물과, 네 계명을 소홀히 여긴 내 모든 죄를 깁기를 위할 뿐아니라, 또한 여기 두루 있는 모든 이를 위하며, 네 성교회의 산 이와 죽은 모든 믿는 자를 위하여 드리는 바로소이다. 엎디어 비오니, 이로써 나와 저들에게 영생의 구원을 얻기에 유익함이 되게 하소서. 아멘. +

(성작에 포도주와 물을 섞을 때)
천주여 + 너 먼저 인성의 지위를 기묘히 만드시고 후에 신묘히 고쳐 새로 꾸미신지라, 비오니 이미 네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인성에 참예하심을 혐의치 않으심을 기억하사, 너 우리로 하여금 이 물과 술의 오묘함을 인하여 저의 천주성에 우리도 참예케 함을 얻게 하소서. (물을 포도주에 섞는다) 저 너와 성신과 한가지로 천주로서 세세에 생활하시고 왕하시나이다. 아멘.

(포도주를 봉헌할 때)
주여 우리들이 네게 이 구원의 잔을 드리오며 네 너그러우심을 간구하오니, 이 잔으로 하여금 마치 아름다운 향내와 같이 네 엄위하신 대전에 사무치게 하시어, 우리와 및 보세 만민의 구령을 위하여 유익함이 되게 하소서. 아멘. +

(성작을 들어 십자를 긋고 제대 위에 놓은 다음에 허리를 굽히고)
주여 비오니, 우리로 하여금 겸손된 마음과 통회하는 정으로 감히 네 엄위하신 대전에 나아감을 얻게 하사, 오늘날 우리 네게 드리는 바 이 제사가 네 성의에 흡합한 바 되게 하소서.

(머리를 들고 면병과 포도주를 축복하며)
비오니 거룩케 하시는 자 영원하신 전능 천주여, 임하사 네 성명을 위하여 예비한 바 이 제물에 + 너그러이 강복하소서.

 

이 경문들은 미사의 목적을 간결하면서도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미사는 우리가 범한 모든 죄를 속죄하고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드리는 것이고 또 산 자와 모든 죽은 신자들을 위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천주께서 이 제사를 받아 주시기를 매우 큰 겸손과 더불어 반복적으로 청합니다.

 

제헌경의 독특한 점은 축성하기 이전임에도, 즉 아직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현존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조촐한 제물”(immaculatam hostiam), “구원의 잔”(calicem salutaris)과 같은 표현을 쓴다는 사실입니다. 교회는 성찬 예식 전체를 미사 성제의 거행으로 간주하므로, 제헌경에 이르러 사제의 기도는 면병과 포도주가 아니라 아직 현존하지 않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봉헌에 집중하고 있는 것입니다.[각주:21]

 

당연하게도, 미사가 속죄를 위한 희생 제사임을 강하게 드러내는 이러한 기도는 개신교인들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제헌경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미사에서 우월한 모든 것을 그 예식에 우겨넣는, 순전히 혐오스러운 일은 다음과 같으니, 제헌경이라 불리우는 그것이다. 여기서부터 거의 모든 것이 희생 제사의 냄새와 맛을 풍긴다.[각주:22]

 

그리고 전례헌장 집행위원회는 제헌경을 미사 경본에서 제거했습니다.

 

대신, “예물 준비 기도”라는 전혀 다른 기도문을 새로 창안하여 집어 넣었습니다.

(면병을 봉헌할 때)
온 누리의 주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주님의 너그러우신 은혜로 저희가 땅을 일구어 얻은 이 빵을 주님께 바치오니 생명의 양식이 되게 하소서.

(성작에 포도주와 물을 섞을 때)
이 물과 술이 하나 되듯이 인성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신성에 저희도 참여하게 하소서.

(포도주를 봉헌할 때)
온 누리의 주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주님의 너그러우신 은혜로 저희가 포도를 가꾸어 얻은 이 술을 주님께 바치오니 구원의 음료가 되게 하소서. 

(허리를 굽히고)
주 하느님, 진심으로 뉘우치는 저희를 굽어 보시어 오늘 저희가 바치는 이 제사를 너그러이 받아들이소서.

 

속죄 제사에 관련된 모든 가톨릭적인 의미가 깔끔히 제거되었습니다. 대신에 새로운 예물 봉헌 기도는 아래와 같은 유대교 식사 기도와 놀랍도록 유사합니다.

온 누리의 임금이시요 땅의 열매를 창조하신 분, 영원하신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온 누리의 임금이시요 포도 나무의 열매를 창조하신 분, 영원하신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각주:23]

 

하지만 이 예물 봉헌 기도는 단순히 유대교의 기도문을 배낀 것은 아닙니다. 안니발레 부니니에 따르면, 이 기도는 바오로 6세의 바람대로 “인간의 노고가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와 결합하여 봉헌된다는 사상”[각주:24]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의 선구자는 명실상부 근대주의자이자 범신론자였던 떼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였습니다. 샤르댕 신부는 면병과 포도주가 아니라 인간의 노고와 자연의 산출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축성된다는 괴상하고 이단적인 자신의 망상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매일마다 축성되어야 할 참된 실체는 그 날 동안의 세상의 발전입니다. 빵은 창조가 성공적으로 산출해내는 것을 적절하게 상징하며, 포도주(피)는 창조가 그 노력의 과정에서 고갈하고 시달리며 잃게 되는 것을 적절하게 상징합니다.[각주:25]
오 하느님, 나는 이 노동의 갱신으로 얻게 될 수확물을 나의 성반 위에 놓겠나이다. 나의 성작에는 오늘 이 땅의 열매에서 짜낼 모든 즙을 부어 담겠나이다.[각주:26]
이 날 증가하게 될 세상의 모든 것, 그리고 감소하게 될 모든 것 …… 이것이 내 희생 제사의 재료입니다. 당신이 바라시는 유일한 재료입니다. …… 오 주님, 당신의 자기력(magnetism)으로 움직이는 모든 피조물이 새로운 날의 새벽에 당신께 봉헌하는 바 모든 것을 포괄하는 이 제병을 받으소서. 이 빵, 우리의 노고는 그 자체로 방대한 조각이며, 이 포도주, 우리의 고통은 용해되는 한 모금에 지나지 않음을 내가 압니다.[각주:27]
그러므로 이제 내 입술을 통해 당신의 효과적인 두 말씀을 이 지상의 고역 위에 선언해주소서. …… 이는 내 몸이다. …… 이는 내 피다. [각주:28]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시어 말씀하셨습니다. “유혈의 제사와 다못 무혈의 제사를 너 즐기지 않으시나, 그러나 육신을 내게 조성하셨도다. 번제와 속제는 네게 의합하지 아니하도다.”[각주:29] 과연 우리 자신의 희생이나 예물 봉헌은 그 자체만으로 천주를 기쁘게 해드릴 수 없고, 오로지 그리스도의 유일한 희생에 종속될 때에만 천주 앞에 초자연적인 공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예물 봉헌 기도의 “저희가 땅을 일구어 얻은 이 빵”이라는 구절은 라틴어 원문에서 직역하면 “땅의 열매와 사람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fructum terrae et operis manuum hominum)이라는 뜻입니다. 천주께서는 이런 것들을 기꺼워하지 않으십니다. 

 

공교롭게도, “땅의 열매”(fructum terrae)라는 표현은 제사적인 맥락에서 성경에 단 한 번 나타납니다. 그것은 바로 ‘카인의 제사’였습니다.

Factum est autem post multos dies ut offerret Cain de fructibus terrae munera Domino. ○ Abel quoque obtulit de primogenitis gregis sui, et de adipibus eorum: et respexit Dominus ad Abel, et ad munera ejus. ○ Ad Cain vero, et ad munera illius non respexit….

카인은 땅의 열매에서 주님께 제사를 드렸고, ○ 아벨은 자기도 제 양떼의 첫새끼들과 그 비계를 바치매, 주님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기꺼이 굽어보셨으되, ○ 카인과 그의 제물은 즐겨 굽어보지 않으셨으므로…. [각주:30]

 

“사람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operis manuum hominum) 역시 성경에서 유일하게 나타나는 대목은 항상 ‘우상숭배’에 관한 구절이었습니다.

Simulacra gentium argentum et aurum, opera manuum hominum.

백성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 사람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로다.[각주:31]

 

모든 것이 의심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의도만큼은 선하지 않았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상기했던 루카 브란돌리니 신부는 과거의 제헌경과 새로운 예물 봉헌 기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그 바탕에 깔려 있는 새로운 교리는 훌륭하다. ‘희생 제사’에 대한 오해가 사라지고, ‘예물 준비’라는 진정하고 본래적인 의미가 다시금 빛을 보게 되었다. 또한 이는 한편으로, 이 예식을 통상적으로 지칭했던 ‘제헌경’이라는 단어를 제거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 봉헌의 개념을 미리 앞당겨 사용한 집전자 개인의 탄원 기도들을 미사 통상문에서 제거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 기도들은 신심을 목적으로 뒤늦게 전례에 도입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그 기도들은 교리적 차원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야기했고, 성체성사에 대한 에큐메니즘의 대화를 위태롭게 했다.[각주:32]

 

아, 에큐메니즘.

 

 

하나의 로마 전문에서 네 개의 감사 기도로

 

로마 교회의 미사 전례에서는 ‘상뚜스’(Sanctus)를 노래한 뒤 ‘미사 전문’(Canon Missae)이 이어집니다. 로마 전문은 성교회의 성직자와 모든 교우를 위하여 드리는 경, 산 이를 기억하여 드리는 경, 하늘에 계신 성인들의 전달을 비는 경, 성체와 성혈을 축성하는 변화지례, 성체와 성혈을 봉헌하는 성변화 후의 제헌경, 죽은 자를 기억하여 드리는 경, 우리를 모든 성인 반렬에 들이시기를 청하는 경 그리고 전문을 끝맺는 독특한 영광경(“마침 영광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미사 전문은 미사 성제 거행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사 전문의 기원은 확실히 파악하기 어려우나 적어도 3-4세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보여집니다. 트리덴틴 공의회는 이 전문이 “모든 오류로부터 그토록 순수하여, 이 전문 안에는 어떤 거룩함과 경건함의 최고 수준의 향을 담고 있지 않거나 그것을 봉헌하는 이들의 정신을 천주께로 들어올리지 못하는 것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선언했습니다.[각주:33]

 

전통적인 미사 거행에서 사제는 미사 전문을 회중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염합니다. “사람의 본성은 외적인 도움 없이 신성한 것들에 대한 묵상으로 들어올려지기가 쉽지 않으므로, 거룩한 어머니 교회는 특정한 예법들을 제정했다. 말하자면 미사 중에 어떤 부분은 조용한 목소리로, 그 외에는 큰 목소리로 발음되도록 한 것이다.”[각주:34]

 

개신교 종교개혁자들은 미사 전문을 혐오했으니, 미사 전문은 미사가 곧 구속과 구원을 위한 희생 제사라는 가톨릭 신학을 분명하게 반영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전문 전체와 더불어 희생 제사의 냄새를 풍기는 모든 것을 거절하자”[각주:35]라고 단호히 말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전례 개혁의 주동자들은 미사 전문 역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습니다. 안니발레 부니니는 이제껏 로마 교회가 하나의 미사 전문만을 고집해온 것을 “수세기에 걸친 전례적 퇴폐의 전형적인 귀결이 된 개탄스러운 빈곤화”[각주:36]라고 표현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전통적인 미사 전문에 “감사 기도 제1양식”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제2양식, 제3양식, 제4양식 등의 감사 기도를 추가로 만들어, 집전 사제가 이 네 가지 감사 기도 중에서 자유로이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했습니다.

 

감사 기도 제2양식은 가장 짧은 감사 기도이며, 3세기 로마의 성 히뽈리뚜스가 기록했다고 추정되는 「사도전승」(Apostolic Tradition)이라는 문헌에서 유래했습니다. 하지만 이 감사 기도는 「사도전승」에 나오는 성찬례 기도문을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아버지를 신앙하는 사람들을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기 위하여” 죽으셨다는 내용이나, 주님께서 수난하시어 “마귀의 결박을 끊으시고, 지옥을 발 아래 짓밟으시고, 의인을 빛으로 인도하실 수 있으셨나이다”라는 내용은 제2양식에서 제거되었습니다. 확실히, 믿는 사람들만이 구원을 받는다든가, 마귀니 지옥이니 하는 것만큼 현대인들의 귀에 거슬리는 내용도 없었을 것입니다.

 

덧붙여, 전통 미사 전문에 매우 풍부하게 나타나는 “제사”(sacrificium)나 “제물”(hostiam)이라는 표현은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감사 기도 제3양식은 대부분 이탈리아의 베네딕토회 수사였던 치프리아노 바가지니(Cipriano Vagaggini)의 작품입니다. 해당 감사 기도에는 “아버지의 백성을 끊임없이 모으시어 해돋이에서 해넘이까지 깨끗한 제물을 드리게 하시나이다”라는 내용이 있는데, 여기서 성부께서 당신 백성을 ‘모으시는 것’과 우리가 ‘깨끗한 제물을 드리는 것’ 사이가 인과 관계, 즉 “~하시어 ~하게 하시나이다”(so that)로 엮여있습니다. 「노부스 오르도 미사에 대한 비판적 연구」의 말마따나, “이 구절의 ‘~하시어 ~하게 하시나이다’는 사제보다 회중이 거행의 필수적인 요소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각주:37] 이는 상기한 바와 같이 미사의 본질을 ‘집회’로 규정하는 개신교적인 오류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감사 기도 제4양식 또한 바가지니의 작품인데, 시리아 또는 비잔틴 전통의 동방 교회 전문을 참고하여 작성된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대략적인 구조만 비슷할 뿐 그 내용은 거의 바가지니의 창작이므로, 결국은 1960년대의 산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심지어 제4양식의 원본에는 “아버지 ‘홀로’ 살아 계신 참 하느님이시고”(quia ‘solus’ es Deus vivus et verus)라는, 아리우스주의를 연상케 하는 이단적 오류가 담겨 있었습니다. 이 내용은 후일 “아버지 ‘한 분이시며’ 살아 계신 참 하느님이시고”(quia ‘unus’ es Deus vivus et verus)로 수정되었지만, 적어도 한국 교회에서 사용하는 미사 경본에서는 아직도 “홀로”를 쓰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좌우지간, 미국이나 한국에서는 단지 더 짧다는 이유로 제2양식만을 고집하는 사제들이 흔합니다.

 

 

성인의 이름 삭제

 

전통 미사 경문에서는 성인들의 이름이 매우 풍부하게 나타납니다. 예컨대 고죄경(“고백 기도”)에서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 외에도 성 미카엘 대천사와 성 요한 세례자, 성 베드로 사도와 성 바오로 사도의 이름이 있습니다. 

Confiteor Deo omnipotenti, beatae Mariae semper Virgini, beato Michaeli Archangelo, beato Ioanni Baptistae, sanctis Apostolis Petro et Paulo, omnibus Sanctis, et tibi, pater: quia peccavi nimis cogitatione, verbo et opere: mea culpa, mea culpa, mea maxima culpa. Ideo precor beatam Mariam semper Virginem, beatum Michaelem Archangelum, beatum Ioannem Baptistam, sanctos Apostolos Petrum et Paulum, omnes Sanctos, et te pater, orare pro me ad Dominum Deum nostrum.

오주 전능하신 천주와, 평생 동정이신 성 마리아와, 성 미가엘 대천신과, 성 요안 세자와, 종도 성 베드루와 성 바오로와, 모든 성인성녀와 신부께 고하오니, 나 과연 생각과 말과 행함에 죄를 심히 많이 얻었나이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 이러므로 평생 동정이신 성 마리아와, 성 미가엘 대천신과, 성 요안 세자와, 종도 성 베드루 성 바오로와, 모든 성인성녀와 신부께 나를 위하여 오주 천주께 전구하심을 비옵나이다.

 

노부스 오르도 미사에서 사용하는 고백 기도는 후반부 복되신 동정녀의 이름을 제외하고 모든 성인들의 이름을 제거했으며, 사제와 회중의 구분을 없애기 위해 “신부께”도 삭제했습니다.

Confiteor Deo omnipotenti, beatae Mariae semper Virgini, beato Michaeli Archangelo, beato Ioanni Baptistae, sanctis Apostolis Petro et Paulo, omnibus Sanctis, et tibi, pater vobis, fratres: quia peccavi nimis cogitatione, verbo opere et omissione: mea culpa, mea culpa, mea maxima culpa. Ideo precor beatam Mariam semper Virginem, beatum Michaelem Archangelum, beatum Ioannem Baptistam, sanctos Apostolos Petrum et Paulum, omnes Angelos et Sanctos, et te pater vos, fratres, orare pro me ad Dominum Deum nostrum.

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바라오니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와 모든 천사와 성인과 형제들은 저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 주소서.

 

사제가 제헌경을 바칠 때, 제대 가운데에서 허리를 굽히면서 다음과 같은 기도를 (라틴어로) 바쳤습니다.

거룩하온 성삼이여, 엎디어 구하오니 이 제사를 받아들이소서. 우리 이를 네게 제헌하옴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고 수난하심과, 부활 승천하심을 기억하기 위하며, 또한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와 성 요안 세자와 종도 성 베드루 바오로와, 이 성인들과 및 모든 성인들을 공경하기 위함이오니, 저들에게는 영광에 도움이 되고 우리에게는 구령에 유익함이 되게 하시고 또한 이 세상에서 저들을 기억하는 우리들로 하여금 천상 전달을 얻게 하시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하소서. 아멘.

 

노부스 오르도 미사에서 이 기도는 ‘통째로’ 삭제되었습니다.

 

(현재는 ‘감사 기도 제1양식’이 된) 미사 전문에서는, 사도들의 이름과 함께 고대 로마 교회가 공경하는 순교자들의 이름이 나열되었습니다.

거룩히 연합하여 특별히 우리 주 천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친이시요 영화로운 평생 동정 마리아를 기억하여 공경하며, 또한 네 복되신 종도와 치명자 곧 베드루 바오로와 안드레아와 야고버와 요왕과 도마와 야고버와 비리버와 발도로메오와 마테오와 시몬과 다두와 또한 리노와 글레도와 글레멘스와 식스도와 고르넬리오와 치쁘리아노와 노렌조와 그리소고노와 요안과 바오로와 고스마와 다미아노와 네 모든 성인들을 기억하여 공경하오니, 저들의 공로와 전달함을 인하여 만사에 네 도우심으로 우리를 보호하시되, 우리 주 그리스도를 인하여 하소서. 아멘.

…… 네 종 우리 죄인들도 네 풍성한 자비를 바라오니, 네 성 종도들과 치명자들 곧 요안과 스데파노와 마지아와 발라바와 이냐시오와 알렉산델과 말셀리노와 베드루와 펠리치따스와 뻬르뻬뚜아와 아가다와 누시아와 악녜스와 세시리아와 아나다시아와 모든 네 성인들과 한가지로 한 몫을 주사 저들과 함께 한 회를 이루시며, 우리 공로를 헤아리지 말으시고 오직 우리가 간구하오니, 죄사함을 베푸사 우리를 저들의 반렬에 두시되, 우리 주 그리스도를 인하여 하소서.

 

노부스 오르도 미사에서 감사 기도 제1양식을 선택할 경우, 동정 마리아, (요한 23세에 의해 추가된) 성 요셉, 베드로와 바오로, 안드레아, 요한과 스떼파노, 마티아와 바르나바를 제외한 모든 성인들의 이름은 ‘선택 사항’이 되었습니다. 적어도 한국 교회의 사제들 대부분에게는 ‘충분히 거룩하고, 유익이 된다 하더라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불문율이 있기 때문에 명동 성당을 비롯하여 제1양식을 사용하는 대부분의 경우 생략할 수 있는 성인들의 이름을 염하지 않습니다. 

 

천주경(“주님의 기도”)을 바치고 난 후 사제는 조용히 다음과 같이 기도합니다.

Libera nos, quæsumus, Domine, ab omnibus malis, præteritis, præsentibus et futuris: et intercedente beata et gloriosa semper Virgine Dei Genitrice Maria, cum beatis Apostolis tuis Petro et Paulo, atque Andrea, et omnibus Sanctis, da + propitius pacem in diebus nostris: ut ope misericordiæ tuæ adjuti, et a peccato simus semper liberi, et ab omni perturbatione securi. Per eumdem Dominum nostrum Jesum Christum Filium tuum, qui tecum vivit et regnat in uitate Spiritus Sancti, Deus. Per omnia sæcula sæculorum.

주여 비오니, 우리를 이전과 지금과 이후 모든 흉악에서 구하시고, 또한 복되시고 영화로우신 평생 동정 천주의 성모 마리아와 종도 성 베드루, 바오로와 성 안드레아와 및 모든 성인의 전달하심으로 +, 우리 생애에 평화함을 주사 하여금, 네 인자하심으로 도움을 받아 평생에 죄악을 피케 하시고,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되. 네 아들 우리 주 그리스도를 인하여 하소서. 저 너와 성신과 한가지로 천주로서 세세에 생활하시고 왕하시나이다.

 

역시나, 성인들의 이름은 물론이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이름까지 삭제되었습니다.

Libera nos, quæsumus, Domine, ab omnibus malis, præteritis, præsentibus et futuris: et intercedente beata et gloriosa semper Virgine Dei Genitrice Maria, cum beatis Apostolis tuis Petro et Paulo, atque Andrea, et omnibus Sanctis, da propitius pacem in diebus nostris: ut ope misericordiæ tuæ adjuti, et a peccato simus semper liberi, et ab omni perturbatione securi. Per eumdem Dominum nostrum Jesum Christum Filium tuum, qui tecum vivit et regnat in uitate Spiritus Sancti, Deus. Per omnia sæcula sæculorumexpectantes beatam spem et adventum Salavatoris nostri Iesu Christi.

주님, 저희를 모든 악에서 구하시고 한평생 평화롭게 하소서. 주님의 자비로 저희를 언제나 죄에서 구원하시고 모든 시련에서 보호하시어 복된 희망을 품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게 하소서

 

확실히, 복되신 동정녀와 성인들을 공경하지 않는 개신교인들에게 있어서, 그토록 많은 성인들의 이름은 부니니의 말마따나 “조금이라도 장애물이나 어려움이 되는 모든 돌부리”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미사의 개신교화

 

이 외에도, 여러 면에서 미사는 노골적으로 ‘개신교 예배’처럼 변했습니다. 본래 미사는 사제가 회중을 등진 채로 모두가 제대를 향한 모습으로 거행되었지만, 이제는 사제와 회중이 서로 마주 본 채로 미사를 거행해야 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제대가 벽에 붙어 있었던 대부분의 성당들은 아름다운 벽제대 앞에 새로운 회중 제대를 설치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제대는 때때로 성전의 품위에 걸맞는 형태를 하곤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리고 신축 성당들에서도) 이러한 회중 제대는 미학적으로도 형편 없을 뿐더러, 전통적인 제대의 형태와는 완전히 다른 식탁의 형태를 띄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식탁 형태의 새로운 제대는 영국의 개신교 종교개혁 당시, 신자들의 마음에서 “교황주의자들의 미사에 대한 낡고 미신적인 의견”(), 즉 미사가 우리 속죄를 위하여 천주께 드려지는 장엄한 희생 제사라는 신앙을 물리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으로 제안되었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으로 배교한 영국 교회(즉, 성공회)의 니콜라스 리들리 주교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식탁의 형태는 소박한 이들을 ‘교황주의자들의 미사에 대한 지닌 낡고 미신적인 의견’(old superstitious opinions of the popish mass)에서 더 많이 돌이켜 주님의 만찬을 올바르게 이행하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제대는 그 위에서 희생 제사를 바치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고, 식탁은 그 위에서 사람들이 식사하도록 돕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 우리가 주님의 상에 나아 갈 때, 우리는 무엇을 위해 나아 가는가? 그리스도를 다시 희생시키고, 그분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우리를 위해 단 한 번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봉헌되신 분을 먹기 위함인가?[각주:38]   

 

또, 전통적으로 미사에서는 오로지 사제만이 성체를 만질 수 있었고, 영성체 때 사제는 무릎을 꿇은 신자의 입에 직접 성체를 넣어 주었습니다. 동서방 교회를 막론하고 천 년 이상 된 거의 모든 전례 관행에서, 평신도는 결코 성체를 만질 수 없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분배하는 것은 세 가지 이유에서 사제의 몫이다. 첫째로, 상기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위격과 마찬가지로 사제가 축성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몸을 축성하시고 또한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 먹도록 주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몸을 축성하는 것이 사제의 몫이듯이, 매한가지로 분배하는 것 또한 그의 몫이다. 둘째로, 사제는 천주와 백성 사이의 중개자로 임명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백성의 헌물을 천주께 제헌하는 것이 사제의 몫이듯이, 축성된 헌물을 백성들에게 전하는 것 역시 사제의 몫인 것이다. 셋째로, 이 성사를 향한 경외에 따라, 축성된 것 이외에는 그 무엇도 이 성사를 만질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육신과 잔이 축성된 것과 매한가지로 사제의 손도 이 성사를 만지기 위해 축성된 것이다. 따라서 누구라도 사제 아닌 이가 이 성사를 만지는 것은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불법이다. 예를 들어서 이 성사가 땅에 떨어졌거나, 다른 긴급한 경우를 말한다.[각주:39]

 

新 미사에서는 전혀 긴급한 경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평신도가 성체를 분배하고, 신자들이 아무렇지 않게 손으로 성체를 집어서 영한다. 이 역시 ‘개신교’에서 시작된 관행입니다. 16세기 종교개혁자 마르틴 부처는 사제가 신자의 혀에 성체를 얹어주는 영성체 방식을 두고 말했습니다.

두 가지 미신에서 도입된 것이니, 첫째는 그들이 이 성사에 대해 보이려는 거짓된 공경이며, 둘째는 성유의 능력을 내세워 그리스도의 백성보다 자신이 더 거룩하다고 주장하는 사제들의 사악한 오만함이다. …… 비록 신앙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원한다면 입에 성체성사를 줌으로써 일시적인 양보를 해 줄 수 있겠지만, 만일 주의 깊게 그들을 가르친다면 그들은 교회의 다른 사람들처럼 성체성사를 손에 받게 될 것이다.[각주:40]

 

사실이 이러하기에, 「노부스 오르도 미사에 대한 비판적 연구」는 도입부부터 다음과 같이 결론짓습니다.

노부스 오르도 미사는 트리덴틴 공의회 제22회기에서 공식화된 거룩한 미사의 천주교 신학으로부터 전체적으로나 세부적으로나 크게 벗어나 있습니다.

 

노부스 오르도 미사는 종래 가톨릭교회가 천 년 넘게 거행해 온 거룩한 미사 성제와 같지 않습니다. 차라리 고교회적인 개신교 예배(즉 루터교나 성공회의 예배)에 비견되는 것이 더 많은 유사점을 찾을 수 있으며, 오히려 가장 경건한 형태의 개신교 예배보다 더 경박할 수도 있습니다.

 

좌우지간 노부스 오르도 미사는 그 본질적인 정신부터가 천주교 신앙에서 어긋났으므로 지금에 와서는 천주님께 드리는 경건한 예배에 대한 신자들의 감각을 완전히 박살냈습니다. 사제는 미사의 시작 때나 공지사항 시간 때 끊임없이 회중과 잡담하려 하고, 따분한 농담으로 웃기려 애씁니다. 미사 도중에 공연을 하거나, 신자들에게 선물을 주는 등 이벤트를 열기도 합니다. 기타와 드럼을 치며 수십 년 전에 유행이 끝난 음악 장르의 CCM을 노래하고 다 같이 춤도 춥니다. 단체 사진을 찍기 위해 거룩한 제단에 신자들이 우르르 몰려 올라가는 것은 예삿일이 아닙니다.

 

노부스 미사는 그리스도 중심적이지 않고 철저히 인간 중심적입니다.

 

전통 미사에서 사제는 미사 전문 때 “이 제물 위에 인자하시고 어지신 얼굴로 내려다 보시기를 혐의치 말으사, 받으시기를 네 의로운 종 아벨의 제물과 우리 조상 아바람(아브라함)의 제사와 네 대제관 멜키세덱이 네게 봉헌한 거룩한 제사, 즉 하자 없으신 제물을 받으심 같이 하소서”라고, ‘아벨의 제물’과 같이 이 제사를 받아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반면 노부스 오르도 미사에서는 대부분의 사제들이 더 이상 이렇게 기도하지 않고 다만 언제나 예물 봉헌 기도를 통해 ‘카인의 제물’이었던 “땅의 열매”를 받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기꺼이 굽어보셨으되, 카인과 그의 제물은 즐겨 굽어보지 않으셨으므로….”[각주:41]

 


 

  1. Council of Trent, sess. XXII, ch. I. [본문으로]
  2. , 『미사경본』(왜관 · 성베네딕도 수도원, 1963), p. 284. [본문으로]
  3. Queen of Martyrs Press, “For the Record and From the Source - What Bugnini Really Said”, 2011. 12. 16. (접속일 : 2026. 5. 1.). [본문으로]
  4. “La definisce proprio a partire dall’assemblea. Viene così rimesso al primo posto il segno-assemblea, nella linea della più genuina tradizione che fin dalle origini aveva visto nella Messa la ‘sinassi’ della comunità cristiana.” (“Aspetti Pastorali del Nuovo ‘Ordo Missae,’” EL 83 (1969), 388-9) [본문으로]
  5. “Sembra che il grande segno che determina e qualifica la celebrazione, secondo il nuovo ‘Ordo Missae,'sia l'assemblea eucaristica.” (Ibid., 388) [본문으로]
  6. Pope Pius XII, Encyclical Letter Mediator Dei (Nov. 20, 1947), #69. [본문으로]
  7. Ibid., #93. [본문으로]
  8. Ibid., 83-85. [본문으로]
  9. “L'assemblea, questa concreta assemblea che fa la Messa, è il soggetto celebrante, dal quale non si può e non si deve assolutamente prescindere.” (“Aspetti Pastorali”, 389) [본문으로]
  10. 『General Instruction of the Roman Missal』(2003), #27. [본문으로]
  11. Pope Pius XII, Encyclical Letter Musicae Sacrae (Dec. 25, 1955), #46. [본문으로]
  12. Pius PP. XI, Litterae Apostolicae Officiorum Omnium (1922. 8. 1.). [본문으로]
  13. Pope Pius XII, Encyclical Letter Mediator Dei, #60. [본문으로]
  14. John XXIII, Encyclical Veterum Sapientia (Feb. 22, 1962). [본문으로]
  15. Second Vatican Council, Constitution on the Sacred Liturgy Sacrosanctum Concilium (Dec. 4, 1963), #36. [본문으로]
  16. Ibid., #116. [본문으로]
  17. EWTN, “Changes In Mass for Greater Apostolate” (접속일 : 2026. 5. 1.). [본문으로]
  18. Second Vatican Council, Sacrosanctum Concilium, #51. [본문으로]
  19. 코린토 1서 11, 27-29. [본문으로]
  20. 묵시록 22, 19. [본문으로]
  21. Anthony Cekada, Work of Human Hands: A Theological Critique of the Mass of Paul VI, 2nd ed. (West Chester, OH: SGG Resources, 2015), pp. 277–278 참조. [본문으로]
  22. Martin Luther, Formula missae et communionis pro ecclesia Vuittembergensi (1523). [본문으로]
  23. Anthony Cekada, Work of Human Hands: A Theological Critique of the Mass of Paul VI, 2nd ed. (West Chester, OH: SGG Resources, 2015), p. 286. [본문으로]
  24. Annibale Bugnini, The reform of the liturgy, 1948-1975 (Collegeville, MN: The Liturgical Press, 1990), p. 369. [본문으로]
  25. Thomas J. King, Teilhard's Mass: Approaches to "The Mass on the World" (New York: Paulist, 2005), p. 97. [본문으로]
  26. Ibid., p. 145. [본문으로]
  27. Ibid., p. 146 [본문으로]
  28. Ibid., p. 148. [본문으로]
  29. 히브리서 10, 6. [본문으로]
  30. 창세기 4, 3-5. [본문으로]
  31. 시편 134, 15. [본문으로]
  32. “Aspetti Pastorali del Nuovo ‘Ordo Missae,’” EL 83 (1969), 394. [본문으로]
  33. Council of Trent, session 22, ch. IV. On the Canon of the Mass. [본문으로]
  34. Council of Trent, session 22, ch. V, On the solemn ceremonies of the Sacrifice of the Mass. [본문으로]
  35. Martin Luther, Formula missae et communionis pro ecclesia Vuittembergensi (1523). [본문으로]
  36. Annibale Bugnini, La Riforma Liturgica (1948-1975), p. 441. [본문으로]
  37. Alfredo Cardinal Ottaviani and Antonio Cardinal Bacci and a Group of Roman Theologians, A Critical Study of the New Mass (1969), chapter V. [본문으로]
  38. , Nicholas Ridley, The Works of Nicholas Ridley, D.D.: Sometime Lord Bishop of London, Martyr, 1555, ed. Henry Christmas (Cambridge: Printed at the University Press, 1843), p. 322. [본문으로]
  39. St. Thomas Aquinas, Summa Theologiae, III, Q. 82, A. 3. [본문으로]
  40. Anthony Cekada, Work of Human Hands: A Theological Critique of the Mass of Paul VI, 2nd ed. (West Chester, OH: SGG Resources, 2015), pp. 370-371. [본문으로]
  41. 창세기 4, 5.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