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큐메니즘 운동이란, 본래 동방 정교회와 개신교의 무수한 분파, 교파들이 서로의 교리적 차이를 내려 놓고 화합과 일치를 도모하고자 하는 움직임이었습니다. 1920년 1월 1일, 동방 정교회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예르마노스 5세(Germanus V of Constantinople)는 “모든 곳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들에”(Unto the Churches of Christ Everywhere)라는 회칙을 발표하여 에큐메니즘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반면, 그로부터 8년 뒤인 1928년에 교황 비오 11세께서는 정반대의 입장을 반영하는 회칙 서한 「모르탈리움 아니모스」를 발표하여 다음과 같이 가르치셨습니다.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반포하신 새 법과 관련된 사안에 있어서 몇몇 사람들은 비슷한 목적을 추구한다. 이들은 종교적 감각이 결여된 사람들이 매우 드물다는 것을 확실시하기 때문에, 비록 각국이 특정 종교 문제에 있어서 서로 다르다 할지라도, 영적 생활의 공통된 기반을 형성하는 것과 같은 특정 교리들을 공언하는 데 있어 형제로서 큰 어려움 없이 동의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그 믿음 위에 세우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이유로 이 사람들에 의하여 대회, 회담, 강연 등이 곧잘 소집되며, 여기에는 수많은 청중들이 참석하고, 모든 종류의 불신자들, 그리스도인들, 심지어 불행히도 그리스도로부터 떨어져 나갔거나 완고하고 집요하게 그리스도의 신성한 본성과 사명을 부인하는 사람들까지 하여 모든 이들이 어떠한 구별도 없이 논의에 참여하도록 초대된다. 모든 종교가 서로 방식은 다를지언정, 우리 모두에게 내재된 감각, 우리를 신에게로 이끌고 신의 통치를 순종적으로 인정하도록 이끄는 그 감각을 드러내고 나타내므로, 그 모든 종교가 다소간에 선하고 찬사받을만 하다고 여기는 ‘그들의 거짓된 의견에’[falsa eorum opinione] 기초하고 있는 시도들을, 확실하게도 천주교인들은 결코 승인할 수 없다. 그러한 의견을 고수하는 사람들은 ‘오류에 빠져 속아 넘어가는’[errant ac falluntur] 것일 뿐만 아니라, 참된 종교의 개념을 왜곡하고 또 참된 종교를 거절하며, 이른바 자연주의와 무신론이라고 하는 것들에게로 조금씩 빗겨 나가게 된다. 이로부터, 그 이론들을 고수하고 또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지지하면, 천주께서 계시하신 종교를 ‘온전히 떠나게 된다’[omnino recedat]는 결과가 명백하게 뒤따른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모든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일치를 기르는 문제가 있을 때, 겉으로 드러나는 선함에 쉽게 속아 넘어간다. …
이러한 시도는 많은 곳에서 수많은 시민들의 지지를 얻어내듯 매우 능동적으로 장려된다. 심지어 매우 많은 천주교인들의 정신을 사로 잡아 자모이신 성 교회의 열망에 부합하게 될 그러한 일치를 가져올 수 있다는 희망으로 매혹한다. 교회는 실로 오류를 범하는 아들들을 불러 모아 자신의 품에 되돌리는 것보다 더 마음에 두는 일이 없다. 그러나 실상, 이러한 감언이설 밑에는 천주교 신앙의 기반을 뿌리 채 파괴하는 ‘참으로 중대한 오류가 숨어 있다’[error latet sane gravissimus]. …
경애하올 형제들이여, 이에 어찌하여 이 사도좌가 그 아래 있는 자들이 천주교를 믿지 않는 자들의 집회에 자리하길 결코 허락하지 않았는지 명백하다. 그리스도인의 일치라 함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하나인 참된 교회로부터 과거에 불행히도 떠나가 분리된 자들이 교회로 되돌아오도록 장려함으로써만 촉진될 수 있기에 그러하다. 만인에게 가시적이며 그 창시자의 의지에 따라 정확히 그분께서 제정하신 것과 동일하게 남아 있을 그리스도의 하나이요 참된 교회로 말이다. 수세기가 흐르는 동안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정배는 결코 오염된 적도 없고 미래에도 오염되지 않을 것이다. 치쁘리아누스가 증언한 대로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자신의 신랑에게 그르칠 수 없다. 그녀는 부패하지 않고 또 정숙하다. 그녀는 오로지 하나의 처소만을 알고, 정결하고 정숙하게 혼인 침실의 거룩함을 지켜낸다”[De Cath. Ecclesiae imitate, 6]. 마찬가지로 거룩한 치명자 치쁘리아누스는 훌륭한 이성으로, “신성한 기반으로부터 비롯되고 천상 성사들과 더불어 엮여 있는 교회 안의 이 일치가 상반되는 의지의 힘으로 갈갈이 찢겨지고 헤질 수 있다”[Ibidem.]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두고 심히 놀랐다. 그리스도의 신비체는 그리스도의 육체적 몸과 같은 방식으로 하나이기에[코린토 1서 12, 12], 또 결속되고 적절히 연합되어 있기에[에페소서 4, 15], 신비체가 분열되고 도처에 흩어진 지체들로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어리석다’[inepte stulteque]. 그러므로 누구든지 몸과 일치되어있지 않은 자는 그 지체가 아니요, 그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와 친교 안에 있지도 않다[에페소서 5, 30; 1, 22 참조].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이 하나된 교회 안에서는 그 누구도 베드로와 그 적법한 후계자들의 권위와 수위권을 받아들이지 않고 인정하지 않으며 순종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을 수가 없다. 지금에 포티오스와 종교개혁가들의 오류에 얽매여 있는 자들의 조상들은 영혼의 우두머리 목자 되는 로마의 주교께 순종하지 않았던가?1
즉 비오 11세의 가르침에 따르면, 모든 종교가 어느정도 선하다는 주장은 “거짓된 의견”입니다. 교회가 갈라졌다고 하는 에큐메니즘 운동의 전제 역시 “부적절하고 어리석[습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가시적인 교회는 결코 갈라질 수 없으며, 단지 그 하나인 교회로부터, 베드로와 그 후계자의 권위 아래 있는 교회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이들이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며, 교부들의 가르침이며, 비오 11세의 전임자이신 교황 레오 13세의 교도권을 잇는 일관된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비오 11세 이전인 1896년, 레오 13세께서는 회칙 서한 「사티스 코니툼」(Satis Cognitum)에서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따라서, 바오로는 이 신비로운 몸을 두고 선언하기를 “대저 온 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음에서 각각의 관절로써 맺어지고 밀접하게 연결되는 것이며, 그 각각의 관절은 다시 각 지체의 분량에 상응하는 힘을 인하여 자기의 임무를 수행하느니라”[에페소서 4, 15-16]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분리되어 흩어진 지체들은 하나이고 동일한 머리와 더불어 일치할 수 없는 것이다. “천주는 하나이시고, 그리스도도 한 분이시며, 당신 교회도 하나이고, 신앙도 하나이며, 화합의 결속 내 몸의 견고한 일치에 함께 참여한 백성도 하나다. 이 일치는 깨질 수 없으며, 구성된 일부의 분리에 의해 하나인 몸이 분열되지도 않는다”[S. Cyprianus, De Cath. Eccl. Unitate, n. 23].
교회의 일치를 더욱 명백하게 제시하기 위해, 치쁘리아누스는 살아있는 몸의 예시를 사용한다. 살아있는 몸의 지체는 머리와 일치되어있지 않고 또 머리로부터 생명력을 끌어내지 않는 한 살아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머리에서 분리된 지체는 필연적으로 죽어야만 한다. 치쁘리아누스는 말하였다. “지체가 분리되고 단절되었다고 해서 교회가 부분으로 분열당할 수는 없다. 모체로부터 단절되어 나간 것은 떨어진 채로 살아갈 수도, 숨을 쉴 수도 없다”[Ibidem.]. 죽은 몸과 살아있는 몸 사이에 무슨 유사성이 있겠는가? “대저 어느 때를 막론하고 누구나 자기의 몸을 미워한 일은 없으며, 오히려 그를 양육하고 보호하기를 마치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대하여 하심과 같이 하느니라. 그리스도 이렇게 하심은 이 우리 등이 저의 몸의 지체로서 그의 살과 그의 뼈의 일부분이 되는 연고니라”[에페소서 5, 29-30].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하나인 교회 외에 사람들이 또 다른 교회를 세우고자 한다면, 그리스도와 같은 또 다른 머리, 즉 또 다른 그리스도를 발명해야 할 것이다. “여러분이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 무엇을 두려워야 하는지 보십시오. 인간의 몸에서 손, 손가락, 발과 같은 일부 지체가 잘려나가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영혼이 절단된 지체를 따라갑니까? 그것은 몸에 있었을 때는 살아있었으나 분리되고서 그 생명을 잃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몸 안에 살아있는 한 가톨릭입니다. 몸에서 잘려 나가면 그는 이단자가 됩니다. 영의 생명은 절단된 지체를 따라 가지 않습니다.”[S. Augustinus, Sermo cclxvii., n. 4].2
이것이 그리스도의 대리자이시며, 가톨릭 교회의 최고 목자께서 교회 전체를 향하여 가르치시는 일관된 교리입니다. 가톨릭 신앙과 에큐메니즘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가톨릭 교회만이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유일한 교회입니다.
에큐메니즘을 공인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그러나 1958년, 안젤로 론칼리 추기경이 “교황 요한 23세”로 선출된 이후에 상황이 역전되었습니다. 요한 23세는 가톨릭 교회가 에큐메니즘 운동에 동참하길 원했습니다. 따라서 그는 1960년 그리스도인일치촉진사무국(Secretariat for Promoting Christian Unity)을 설립하고, 동방 정교회와 여러 개신교 교파들과 신학적 대화를 시도했으며, 그들을 1962년 자신이 소집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참관인으로 초청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한 23세는 일찍이 교황청으로부터 이단 혐의를 비롯하여 각종 제재와 징계를 받았던 신학자들―카를 라너, 에드바르트 스힐레베이크스, 한스 큉, 이브 콩가르, 앙리 드 뤼박 등―을 복권시키고, 그들이 공의회에 자문위원으로 참석하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특히 콩가르는 개신교 학자들과 꾸준히 교류했던 자로서, 교회를 비판하고 열교를 칭송하는 데 많은 열정을 할애하다 로마로부터 계속해서 경고와 제재를 받았던 자였습니다. 그에 대한 <가톨릭신문>의 기사는 (비록 그를 찬사하고자 하는 의도지만) 콩가르의 내역을 적나라하게 보여 줍니다.
이브 콩가르는 … 루터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여 베를린, 바르트부르크, 엘푸르트, 빗덴베르그 등지에서 루터를 탐구하였다. 빠리에서 개신교 신학자들과 교류하면서 프로테스탄티즘을 이해하게 되었고 … 한편 1936년 1월 일치주간에 행한 특강이 큰 반향을 불러왔다. 모든 그리스도교파들이 그의 과감한 교회비판과 타교파에 대한 폭넓은 이해에 대하여 경악했던 것이다. …
1939년에 그는 그의 스승 셔뉘 신부와 함께 「분열된 그리스도교도」(1937) 때문에 로마로부터 엄중한 경고를 받았다. … 1947년에는 앞서 말한 「분열된 그리스도교도」(1937)와 「교회신비의 탐구」(1941)가 다시 문제가 되었다. 문제의 핵심은 이 책들이 비가톨릭교파에 대하여 너무 적극적인 가치를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 제네바에서 wcc(세계교회협의회)준비를 위한 가톨릭의 입장이란 글이 저지당하였고 그 이듬해 (1948)결성키로 된 wcc에 옵서버를 보낼 준비도 저지당하였다. 1950년 「교회안에서의 진짜 개혁과 가짜 개혁」(1950)을 출판한일로 인하여 로마는 그를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었다. …
이후로 그는 극도로 조심하면서 외적 활동을 자제하다가 1951년 스트라스부르그에서 행한 루터에 관한 강연이 로마에 고발되었고 「교회안에서의 진짜 개혁과 가짜 개혁」(1950)은 재판이 금지되었다. 1952년부터는 일체의 논문뿐만 아니라 사소한 서평까지도 사전검열에서 저지되었고 … 빠리에 소환되어 보니 셔뉘, 페레, 봐슬로 신부들이 콩가르 신부와 함께 활동금지를 당하였다. … 1954년에서 55년까지 석달동안 로마에 소환되어 심문을 받고 영국으로 추방되었다가 연말에 귀국하여 스트라스부르그 수도원에 거주제한으로 있으면서 소규모의 사제 활동밖에는 할수 없었다.3
콩가르는 교회로부터 경고를 받고, 저지당하고, 또 저지당하고, 요주의 인물로 낙인 찍히고, 고발당하고, 금지당하고, 검열당하고, 금지당하고, 추방당하기 일쑤였습니다. 그의 이단적인 신학에 관한 문제를 제외하고 오로지 이런 부분만 똑 떼어놓고 본다면, 마치 부당한 독재 권력에 희생당한 영웅이라도 되는 것 같아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확실히, 콩가르는 검사성성 건물 벽에 두 번이나 오줌을 눌 정도로 영웅적이었습니다.4
결국 공의회는 그들의 영향을 여실히 받게 되었습니다. 알프레도 오타비아니 추기경의 신학 자문위원이자 정통 교리의 옹호자였던 조셉 클리포드 펜튼 몬시뇰(Msgr. Joseph Clifford Fenton)은, 공의회 도중에 작성한 일기에서 이러한 영향에 대해 자신의 당혹감을 솔직히 드러냈습니다.
나는 전례에 관한 자료를 읽기 시작했는데, 나쁜 신학에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실제로 멍청하게도 교회가 ‘simul humanam et divininam, visibilem et invisibilem’[인간적인 동시에 신적이고, 가시적인 동시에 비가시적]이라 하는 것으로 족한다. 또 그들은 교회가 ‘quousque unum ovile fiat et unus pastor’[하나의 양떼, 하나의 목자가 있을 때까지] 일한다고 말한다. 마치 그러한 조건이 애진작에 달성된 바가 없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1962년 10월 19일].
에큐메니즘에 대한 부분은 웃기는 소리다. 꼭 19세기 문헌이나 좌파 잡지에 실린 이류 기고문 같이 읽힌다[1965년 10월 28일].5
1964년 11월 21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발표된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루멘 젠시움」(Lumen Gentium)은 그리스도의 유일한 교회, 하나이고 거룩하며 보편되고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가 “가톨릭 교회 안에 존재한다”라고 가르쳤습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의 구성 요소들이 가톨릭 교회의 조직 “바깥에서도” 발견된다고 주장합니다.
유일한 중개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이곳 지상에 당신의 거룩한 교회, 곧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공동체를 가시적인 구조로 세우시고 끊임없이 지탱하시며, 이를 통해 만인에게 진리와 은총을 전달하신다. …
이 세상에 조직된 사회로서 설립되고 구성된 이 교회는, 베드로의 후계자 및 그와 친교를 이루는 주교들이 다스리는 ‘가톨릭 교회 안에 존재한다’[subsistit in Ecclesia catholica]. 가톨릭 교회의 가시적인 구조 바깥에서도 성화와 진리의 많은 구성 요소가 발견되나, 이러한 구성 요소들은 그리스도 교회의 고유한 은사로서 보편적 일치를 재촉하는 원동력이 된다.6
공의회는 같은 날 아예 ‘에큐메니즘에 관한’ 교령 「우니타티스 레딘테그라시오」(Unitatis Redintegratio)를 마련했습니다. 이 교령은 에큐메니즘 운동이 교회의 분열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인정하며, 세례를 받았으나 가톨릭 교회에 소속되지 않은 이들 역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릴 권리가 있[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라고 주장합니다. 심지어 천주 성신의 은사가 “가톨릭 교회의 가시적인 경계 바깥에서도 존재할 수 있다”고 합니다. 동방 정교회나 개신교와 같은 분파와 이단을 두고, “성신께서 그들을 구원의 수단으로 사용하시기를 거부하지 않으셨[다]”고까지 말합니다.
천주의 이 하나이고 유일한 교회에는 시작부터 어떤 분열이 발생했으며, 사도는 이 분열을 강하게 단죄했다. … 에큐메니즘 운동은 그러한 장애를 극복하고자 노력한다. 그럼에도 세례 안에서 신앙으로 의롭게 된 모든 이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임은 변함없는 진실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릴 권리가 있으며, 따라서 가톨릭 교회의 자녀들에게 마땅히 형제로 받아들여진다.
나아가서 함께 교회를 세우고 교회 자체에 생명을 주는 핵심적인 구성 요소들과 보화들 중 일부, 심지어 매우 많은 것들이 가톨릭 교회의 가시적인 경계 바깥에서도 존재할 수 있다. 기록된 천주의 말씀, 은총의 삶, 믿음, 희망과 사랑, 그 밖에 성신의 내적 은사와 가시적인 구성 요소들이 그러하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께로부터 와서 다시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며, 그리스도의 유일한 교회에 귀속되는 것이다.
우리에게서 갈라진 형제들 또한 그리스도 종교의 많은 전례적 행위들을 행하고 있다. 이러한 행위들이 각 교회나 공동체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실로 은총의 생명을 낳아 줄 수 있음이 지극히 마땅하다. 이러한 전례적 행위들은 구원의 공동체에 들어서는 길을 열어 줄 수 있다고 간주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갈라진 교회들과 공동체들이 일부 측면에서 결함이 있다고 믿기는 하나, 어떤 의미로든 구원의 신비 안에서 의미와 중요성을 박탈당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성신께서 그들을 구원의 수단으로 사용하시기를 거부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 수단의 효과는 교회에 맡겨진 은총과 진리의 충만함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다.7
반면 과거 교황 비오 8세께서는 1829년 회칙 서한 「트라디티 우밀리타티」(Traditi Humilitati)에서 성 예로니무스를 인용하시며, 교회 바깥에서 어린양(성체성사)을 먹는 자는 멸망하리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러한 이단들 중에는 이 시대 궤변론자들의 역겨운 어거지가 속하는데, 이들은 서로 다른 신앙 고백들 가운데 어떠한 차이도 인정하지 않으며, 어느 종교에 속하였든지 모든 이들에게 영원한 구원의 문이 열린다고 생각한다. … 종교 간에 차이가 없다 여기는 이 실로 치명적인 개념은 자연적인 이성에 비추어서도 거부된다. 다양한 종교들이 종종 서로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짐은 이 사실을 장담한다. 이 노련한 궤변론자들에게 맞서 사람들은 가톨릭 신앙 고백이 유일하게 참되다는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사도가 “한 주시요 한 신앙이며 한 성세 있을 뿐이니라”[에페소서 4, 5] 하고 선포하듯이 말이다. 예로니무스는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이 집 밖에서 어린양을 먹는 자는 홍수 때 노아와 함께 방주에 타지 않았던 자들처럼 멸망할 것이다”[Epistle to Damasus, the 37th pope]. “믿고 세를 받는 자는 구령할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죄로 판단함을 받으리라”[마르코 복음 16, 16].8
이단자들에게 영성체가 허락되다
공의회 이후인 1983년, 당시 교황으로 즉위하고 있었던 요한 바오로 2세는 기존의 가톨릭 교회법전을 개정하여 새로운 교회법전을 반포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걸맞게 교회법을 갱신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의도였습니다.
그리고 해당 교회법전은 교회가 분파자와 이단자들에게 고해성사와 종부성사, 무엇보다 ‘성체성사를’ 분배해줄 수 있다고 명시합니다.
③ 가톨릭 교회와 온전한 친교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동방 교회의 구성원이 스스로 청하고 적절하게 준비했다면, 가톨릭 성사 집전자들은 이들에게 고해성사, 성체성사, 종부성사를 합법적으로 분배할 수 있다. 이는 사도좌의 판단에 따라 성사와 관련하여 이들 동방 교회들과 동일한 상황에 있다고 여겨지는 다른 교회의 구성원들에게도 유효하다.
④ 죽음의 위험이 있거나, 교구장 주교나 주교회의의 판단에 따라 다른 중대한 필요성이 절박한 경우에는, 가톨릭 성사 집전자들은 가톨릭 교회와 온전한 친교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도, 그들이 자신들의 성사 집전자에게 다가갈 수 없고 스스로 청할 때 그들에게 합법적으로 동일한 성사를 분배할 수 있다. 단 그들이 이 성사들에 대해서 가톨릭적 신앙을 표명하고 적절한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9
으레 천주교 신자들은 ‘개신교 신자들은 성체성사가 없지만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주님의 몸을 받아 먹는 큰 은총을 누릴 수 있다’며 자랑스러워하곤 합니다. 만약 어떤 개신교 신자가 무심코 성체를 영했다 하면, 중대한 신성모독이라며 분노를 아끼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개신교 신자들도 성체를 받을 수 있습니다. 죽음의 위험이 있다고 해서 성체를 받아도 좋다는 것도 터무니없지만, 교구장 주교가 좋다고 판단하고, 또한 개신교 신자가 자기 목회자에게 갈 수 없고 또 ‘성사에 한해서’ 가톨릭적인 믿음을 일부만 고백한다면, 개신교 신자는 영성체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중대한 필요성이 절박한 경우”라는 구문에 집착하여 이 문제를 축소하려는 시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예컨대, 미국 뉴욕 록빌 센터 교구의 지침에서는 상기한 사항들 외에 아무것도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다!10
애당초 동방 정교회나 오리엔트 정교회 신자들에게는 아무런 조건도 요구되지 않습니다. 그들 역시 교황 수위권과 교황 무류성, 연옥, 필리오퀘, 성모 무염시태 등 신앙의 진리를 부인하는 ‘이단’이며, 이혼과 재혼을 세 번이나 허락하여 간통을 용인하기까지 하는 집단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일치촉진사무국의 후신인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는 「에큐메니즘의 원칙과 규범의 적용에 관한 지침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지침서는 먼저 성체성사의 두 가지 불가분한 특성, 즉 ‘일치의 표지’와 ‘영적인 양식’을 둘로 나눕니다. 따라서 교회와 일치하지 못한 이들에게 있어서 성체성사는 일치의 표지로서 기능하지는 못하지만, 영적인 양식으로는 기능할 수 있다는 기이한 논리를 펼칩니다.
또한 이는 가톨릭 신앙을 지니지 않은 자라 할지라도 유효한 세례를 받았다면 교회와 “불완전할지라도 실제적인 친교”를 맺는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이 바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에큐메니즘입니다.
성사는 성령을 통한 그리스도와 교회의 행위이다. 구체적인 공동체 안에서 성사를 거행하는 일은 신앙, 예배, 공동체 생활 안에서 그 일치의 실재에 대한 표지이다. 성사들은 ―특히 무엇보다도 성체성사는― 표지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영적 생활의 일치의 원천이며, 이를 세우는 수단이다. 따라서 성체의 친교는 완전한 교회적 친교 및 그 가시적 표현과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다.
동시에 가톨릭교회는 다른 교회들과 교회적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세례로 말미암아 가톨릭 교회와 불완전할지라도 실제적인 친교를 맺게 되며, “세례는 세례를 통하여 새로 태어난 모든 사람을 묶어 주는 일치의 성사적 끈이 된다…. 온전히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한 생명을 얻도록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우니타티스 레딘테그라시오」, 22항]라고 가르친다. 세례를 받은 이들에게 있어서 성체는 죄를 이기고 그리스도의 생명 자체를 살게 하며, 그리스도 안에 더욱 깊이 통합되고 그리스도 신비의 경륜 전체를 더더욱 공유하게 하는 영적인 양식이다.
일반적으로 가톨릭 교회가 영성체와 고해, 종부성사에 참여하도록 허락하는 것은 신앙과 예배, 교회적 삶 안에서 일치를 공유하는 이들뿐임을, 항상 함께 고려되어야 하는 이 두 가지 기본 원칙들에 비추어야 한다. 같은 이유로, 가톨릭교회는 특정한 상황에서 예외적인 방식에 따라 특정한 조건 아래, 다른 교회들이나 교회적 공동체들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성사들에 참여토록 허락할 수 있고 심지어 권장될 수 있음을 인정한다.11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러한 관행이 “기쁨의 원천”이 되며, 에큐메니즘을 발전시키기 위해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가톨릭 성사 집전자들이 가톨릭 교회와 온전한 친교를 이루고 있지는 못하지만 성체, 고해, 종부성사를 얻기를 절실히 원하고 자유로이 요청하며 이 성사들에 관한 가톨릭 교회 신앙 고백을 표명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특정한 상황에 이 성사들을 분배해줄 수 있음을 언급하는 것은 기쁨의 원천입니다. 반대로 특별하고 특정한 상황에서는 천주교인들도 이 성사들을 유효하게 지니고 있는 교회들의 성사 집전자들에게 이 동일한 성사들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호간의 성사 교류를 위한 조건은 특별 규범에 제시되었으며, 에큐메니즘을 발전시키기 위해 이러한 규범들은 반드시 존중되어야 합니다.12
반면, 애당초 가톨릭 교회의 성사는 가톨릭 신자, 또는 가톨릭 신앙으로 회심하는 이들에게만 주어질 수 있었습니다. 교황 베네딕토 15세께서 반포하셨던 1917년 교회법전에는 다음과 같이 규정되어 있습니다.
교회의 성사를 이단자 및 분파자들에게 분배하는 것을 금한다. 설령 이들이 좋은 신앙 안에서 요청하더라도, 사전에 자신의 오류를 부정하고 교회와 화해하지 않는 이상 그러하다.13
교황 비오 12세께서는 “모든 죄는 아무리 중대할 수 있을지언정, 분파와 이단, 배교처럼 그 죄의 본성 자체로 교회의 몸에서 사람을 갈라지게 하는 것은 아니다”14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분파 죄, 이단 죄, 배교 죄는 여타 다른 죄들과는 달리 그 본성 자체로 사람을 교회로부터 갈라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트리덴틴 공의회는 대죄를 지은 자는 성체를 영하기에 앞서 고해성사를 받아야 하며, 그렇지 않고 자격 없이 영하는 자는 죽음과 단죄에 떨어지게 된다고 무류하게 가르쳤습니다.
카논 제11조. 만일 누구든지 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를 영하는 준비로서 신앙만으로 족하다고 말한다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또한 이토록 위대한 성사를 자격 없이 영하지 못하게 하고, 자격 없이 영함으로써 죽음과 단죄에 떨어지지 않게 할 것이며, 이 거룩한 공의회는 명하고 선언하는 바, 양심에 죽을죄의 짐이 지워진 사람들은 스스로 상등통회를 발했다고 생각할지라도, 영성체 하기 앞서서 고해 사제가 있을 때 고해성사를 반드시 받아야만 한다. 더욱이, 누구든지 주제넘게도 이와 모순되는 바를 가르치거나, 설파하거나, 완강히 주장하거나, 공공연한 논쟁에서 옹호한다면, 그 사실 자체에 의하여 파문될지어다.15
하지만 이제는 주교의 판단만 있으면, 분파자든 이단자든 자신의 분파와 이단을 전혀 철회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성체성사를 영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피렌체 공의회의 교령 「칸타테 도미노」(Cantate Domino)에 따른 무류한 선언에 의하면, 가톨릭 교회와의 일치 밖에 있는 자들에게 성사는 구원에 유익이 되지 못하며, 설령 순교를 했을지라도 가톨릭 교회 안에 머무르지 않고서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굳게 믿고, 공언하고, 선포하는 바, 가톨릭교회 안에 살지 않는 자들, 이교도들뿐만 아니라 유대교인들과 이단자들과 분파자들은 인생의 끝을 맞기 전에 양떼에 더하여지지 않는다면, 영원한 생명의 참여자가 될 수 없으며 “마귀와 그 악신을 위하여 예비한 영원한 불로”[마테오 복음 25, 41절] 떠나가게 될 뿐이다. 교회 몸의 일치는 그토록 강력하기에 그 안에 머무르는 자들에게만이 교회의 성사가 구원에 유익이 되고, 재계, 자선, 그 외 경건한 의식과 그리스도교 예배 수행이 영원한 상급을 자아낸다. 어떠한 자선을 행하였든, 심지어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피를 흘렸을지라도, 가톨릭 교회의 품과 일치 안에 머무르지 않고서는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다.16
요한 바오로 2세가 “기쁨의 원천”이라고 했던 것은 사실 “끔찍한 보복”이요 “천주의 진노”였습니다.
이단자들을 성인으로 받아들이다
2023년 5월 11일, 당시 교황으로 즉위했던 프란치스코는 콥트 정교회 교황 타와드로스 2세와의 회담에서 21명의 콥트 정교회 신자들을 『로마 순교록』(Roman Martyrology)에 추가하여 가톨릭 교회의 성인으로 공경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 21명은 2015년 2월 15일 리비아에서 무슬림들에게 살해당한 희생자들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칼케돈 공의회를 부인하는 합성론 이단이요, 교황의 수위권을 부인하는 분파인― 콥트 정교회의 무슬림 테러 희생자들을 가톨릭 교회의 순교자로 받아들이는 근거로, 그들이 피의 세례, 즉 ‘혈세’(血洗, baptism of blood)를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2015년 2월 15일 리비아에서 살해당한 콥트 순교자들의 진귀한 유해를 선물받은 것에 대해 저의 감사함을 말로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이 순교자들은 물과 성신뿐만 아니라 피로도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이들의 일치의 씨앗인 피로 말입니다. 저는 성하[타와드로스 2세]의 동의를 얻어, 이 스물 한 명의 순교자들이 우리 두 교회를 하나되게 하는 영적 친교의 표지로서 『로마 순교록』에 포함될 것임을 발표하게 되어 기쁩니다.17
분명 혈세는 정통 가톨릭 교리입니다. 교회는 물로 세례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순교로 말미암아 세례의 은총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쳐 왔습니다. 그러나 이는 열망의 세례, 즉 ‘화세’(火洗, baptism of desire)가 전제되어야만 성립할 수 있습니다. 화세란 예컨대 예비 신자가 세례성사를 통하여 가톨릭 교회의 구성원이 되기를 열망하거나, 불가항력적인 무지로 가톨릭 교회가 유일한 구원의 길임을 모르는 사람이 신덕, 망덕, 애덕이라는 초자연적인 세 가지 덕을 발하여, 세례의 은총을 얻어 구원되는 것을 말합니다.
저 21명의 콥트 정교회 신자들은 ‘아마도’ 구원받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모국인 이집트는 90% 가량이 무슬림이며, 그나마 10%가 기독교이긴 하나 그중 콥트 정교회가 압도적 다수입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가톨릭 교회에 대해서 충분히 알지 못했으리라고 가정하는 것은 무리가 아닙니다. 또한 그들이 끝까지 신앙을 저버리지 않고 그리스도께 경배를 드리며 죽었음을 고려할 때, 천주께서 계시하신 것이라면 무엇이든 순종하여 믿겠다는 ‘신덕’, 천주께서 베푸실 상급을 바라는 ‘망덕’, 천주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실천하며 죄는 저지르지 않겠다는 의지인 ‘애덕’이 있었으리라고 유추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이 구원받았을지에 대한 답은 ‘알 수 없다’입니다. 그 누구도 사람의 내면을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직 외면을 가지고만 판단할 수 있습니다. 객관적인 차원에서, 그들은 가톨릭 교회의 구성원이 아니었고, 분파와 이단에 속해 있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이 천국에 들어 갔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는 어떠한 객관적이고 긍정적인 근거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피를 흘렸다는 사실은 아무런 판단의 근거도 되지 않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상기했듯이 피렌체 공의회의 교령 「칸타테 도미노」를 통해 무류하게 선언했습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피를 흘렸을지라도, 가톨릭 교회의 품과 일치 안에 머무르지 않고서는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다.” 가톨릭 교회와 일치해야 그 흘린 피가 의미 있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닙니다.
프란치스코는 정확히 그 반대를 주장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피를 흘렸으므로 가톨릭 교회의 품과 일치 안에 머무르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콥트 정교회 희생자들의 구원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과 달리, 이러한 주장을 판단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이는 매우 명백한 ‘이단’입니다.
그리고 이 이단이 ‘어디서’ 왔는지는 자명합니다. 프란치스코는 2021년, 21명의 콥트 정교회 신자들이 살해당한 날에 그들을 애도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2015년 2월의 오늘은 제가 제 마음에 간직한 날입니다. 그 스물 한 명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물과 성신, 또한 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피의 세례를 저는 제 마음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성인들, 모든 그리스도인의 성인들, 모든 그리스도교 교파와 전통의 성인들이십니다. 그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 삶을 씻은 사람들이며,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 하느님의 신실한 백성에 속한 사람들입니다.18
덧붙여, 콥트 정교회와 같은 합성론 이단을 고집하는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총대주교에게,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연설했습니다.
초대 교회에서 순교자들이 흘린 피가 새로운 그리스도인들의 씨앗이 되었듯이, 오늘날 모든 교회들의 많은 순교자들의 피가 그리스도인 일치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모든 교회적 전통의 순교자들과 성인들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입니다. 그들의 이름은 하느님의 교회의 유일한 순교록에 새겨졌습니다. 순교자들의 에큐메니즘은 우리에게 더 큰 일치의 길로 나아가라는 부름입니다.19
가톨릭 교회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교” 교파, 즉 동방 정교회, 콥트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 루터회, 성공회, 감리회, 장로회 등… 모든 종류의 분파와 이단을 포함하는 보다 상위의 개념인 “하느님의 백성”, “하느님의 신실한 백성”, “하느님의 교회”를 프란치스코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콥트 정교회의 희생자들이 가톨릭 교회의 구성원인지, 구성원이 아닌지는 그에게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가톨릭 교회조차도 아우르는 더 큰 “교회”에 우리 모두가 소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아주 완벽하게도, 그리스도의 교회가 곧 가톨릭 교회인 것이 아니라 가톨릭 교회 “안에 존재한다” 하였던, 그 구성 요소가 가톨릭 교회 바깥의 분파와 이단들 가운데에서도 현존한다 하였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론의 정당한 논리적 귀결입니다.
‘가톨릭 교리’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리’ 사이의 모순
‘1960년대까지 가톨릭 교회의 일관된 정통 교리’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교리’를 도식화하여 비교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합리적 사고가 가능한 사람이라면 둘 사이에 분명한 모순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정통 가톨릭 교리는 “그리스도의 교회는 곧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거룩한 로마 가톨릭 교회‘이다’”(Christi Ecclesiam ‘quae’ sancta, catholica, apostolica, Romana Ecclesia ‘est’)라고 가르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리는 “이 세상에 조직된 사회로서 설립되고 구성된 이 교회는 가톨릭 교회 ‘안에 존재한다’”(Haec Ecclesia, in hoc mundo ut societas constituta et ordinata, ‘subsistit in’ Ecclesia catholica)라고 주장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당시와 그 직후 얼마 동안 바티칸의 입장은 이 두 가지 진술 사이에 모순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2001년, ‘subsistit in’이 오히려 그리스도의 교회와 가톨릭 교회의 동일성을 더 엄격하게 강조하는 개념이라 옹호했던 요제프 라칭거(훗날 베네딕토 16세)조차 이렇게 인정해야 했습니다. “공의회는 이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비오 12세께서 회칙 「미스티치 코르포리스 크리스티」에서 말씀하신 ‘가톨릭 교회는 그리스도의 하나인 신비체‘이다’(est)’라는 그분의 공식과는 다르게 되었습니다. ‘subsistit’과 ‘est’ 사이의 차이점 안에는 에큐메니즘 문제 전체가 내포되어 있습니다.”20 사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끝난지 얼마 되지 않은 1969년, 라칭거는 「루멘 젠시움」의 이 ‘subsistit in’ 공식이, 가톨릭 교회의 “절대성 주장을 축소하는 것”(Reduktion des Absolutheitsanspruchs)21이라고 보다 더 솔직하게 인정했습니다.
비록 이 공식에 관한 문제가 모호할지라도, 명백한 모순들이 너무 많습니다. 일관된 정통 가톨릭 교리는 오로지 가톨릭 교회만이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유일한 교회이며, 그로부터 떨어져 나간 동방 정교회와 개신교와 같은 분파와 이단의 성사와 종교 행위는 어떠한 은총도 낳지 못하며 구원에 있어서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든지, 교회의 일부가 아니며, 살아 있는 몸에서 잘려나간 죽은 몸입니다. 그들은 객관적으로 교회의 구성원이 아닙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그 이후의 교리는 정반대로 주장합니다. 분파와 이단이라 할지라도 세례가 유효하다면 그들은 가톨릭 교회와 불온전하게나마 친교를 이룹니다. 사실 그들에게도 교회의 구성 요소가 있으며, 교회가 그들 가운데 현존합니다. 그들의 성사와 종교 행위는 은총을 낳아줄 수 있고, 구원에 있어서 가치가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의 일부입니다. 여전히 영적 생명이 미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톨릭 교회가 그들에게 성체성사를 베풀 수 있고 또 그들의 순교자를 우리의 순교자로 인정할 수 있다는 귀결이 명백한 이단이라는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단순한 교리적 모순까지도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과거의 교리들은 ‘무류한 교의에 대한 교회의 이해’라는 지위를 분명하게 지닙니다.
예컨대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라는 무류한 교의적 명제를 두고, 20세기 초 레너드 피니 신부(Rev. Leonard Feeney)는 이것이 오로지 세례를 통해 가톨릭 교회의 구성원이 된 이들만이 구원받을 수 있으며 그렇지 못한 자들은 가톨릭 교회와 일치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되어 모조리 지옥에 떨어진다고 이해하고 또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교황청 검사성성은 1949년 8월 8일 서신을 발표하여 “이 교의는 교회가 스스로 이해한 의미대로 이해되어야 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검사성성은 여러 교회의 가르침과 함께 상기한 비오 12세의 「미스티치 코르포리스 크리스티」에서 “무의식적인 열망과 갈망으로 구속주의 신비체와 특정한 관계를 맺고 있는”22 이들에 관한 내용을 인용함으로써, 세례성사를 받길 원하는 명시적 또는 암묵적 열망에 따라 구원의 은총을 받아 가톨릭교회와 일치할 수 있다는 화세 교리를 재확인했습니다. 끝내 피니 신부는 파문당했습니다.
이러한 신앙의 교리는 분명 올바른 이성의 추론을 통해 발전할 수 있지만, 이전의 교리와 모순될 수는 없습니다. 즉 교리가 실질적으로 변화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가르쳤습니다.
다만 신앙이 이성 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비를 계시하시고 신앙을 불어 넣으시는 바로 그 천주께서 인간의 영혼에 이성의 빛을 부여하셨기 때문에 신앙과 이성 사이에는 진정한 불화가 존재할 수 없으며, 더욱이 천주께서는 스스로를 부인하실 수도 없고, 진리가 진리와 모순될 수도 없다. 다만 이러한 모순의 헛된 양상은 주로 신앙의 교의가 교회의 정신에 따라 이해되고 해석되지 아니하였거나, 삿된 의견이 이성의 결정으로 간주되는 데서 비롯된다. 따라서 “우리는 신앙에 의하여 비추어진 진리에 반하는 모든 주장은 전적으로 거짓이라고 정의한다”[제5차 라테란 공의회].
또한, 가르치는 종도적 의무와 함께 신앙의 유산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은 교회는 천주의 섭리로부터 “아무도 세속의 지혜와 허무한 궤변으로써 너희를 속이지 않도록”[콜로새서 2, 8] “허명무실의 소위 인식이란 것”[티모테오 1서 6, 20]을 금지할 권리와 의무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의 가르침에 반하는 것으로 알려진 것이나, 특히 교회가 단죄한 것이라면, 그러한 종류의 의견을 학문의 정당한 결론으로 옹호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진리에 대하여 삿된 양상을 보여주는 오류로 간주할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신앙과 이성은 결코 서로 상반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상호 도움을 준다. 올바른 추론이 신앙의 근거를 증명하고 그 빛에 비추어 천상 것들에 대한 지식을 완전하게 하여주는 동시에 신앙은 이성을 오류로부터 해방하고 보호하며 다방면의 지식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
천주께서 계시하신 신앙의 교리는 인간 정신이 완성하도록 철학적 창안물로 전승되어진 것이 아니라, 신실하게 보호하고 무류하게 해석하도록 그리스도의 정배에게 천상 유산으로 맡겨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모이신 성 교회가 한 번 선언한 거룩한 교의에 대한 이해는 영구히 유지되어야 하며, 더 깊은 이해라는 미명 아래 그 의미에서 퇴보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아니 된다. “그러므로 … 개인의 이해, 지식, 지혜가 모든 사람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그것이 교회 전체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시대와 세기가 나아감에 따라 강하게 성장하고 진보하되, 오로지 그 자체의 유[類], 즉 같은 교의 안에서 같은 지각과 같은 이해로만 이루어지게 할 것이다”[Vincent of Lerins, Commonitorium (Notebook), 28 (PL 50, 668)].23
그 옛날 그리스도의 대리자들과 교부들의 일관된 가르침은, 그리스도의 유일한 교회는 가톨릭 교회‘이고’, 가톨릭 교회에 속하지 않고 바깥에 있는 분파자와 이단자들은 그리스도의 유일한 교회에서 떨어져 나갔으며, 그들이 은총과 상관이 없고 구원에 있어서도 무가치하다고 단언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리스도의 유일한 교회가 가톨릭 교회 ‘안에 존재하고’, 그 요소는 가톨릭 교회 바깥의 분파와 이단에서도 발견될 수 있으며, 은총을 발할 수 있고 또 구원에 가치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둘의 의미는 전혀 같지 않으며, 전자에서 후자를 올바르게 추론할 수도 없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에큐메니즘은 피니주의(Feeneyism)만큼이나 본래의 교리와 같은 이해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 Pope Pius XI, Encyclical Letter Mortalium Animos (Jan. 6, 1928) #2; 4; 10-11. [본문으로]
- Pope Leo XIII, Encyclical Letter Satis Cognitum (June 29, 1896), #5. [본문으로]
- 정하권, “고(故) 이브 콩가르의 삶과 신학 (상)”, <가톨릭신문>, 2012. 8. 30., (접속일 : 2026. 5. 1.). [본문으로]
- Novus Ordo Watch, “Vatican II Star Theologian Boasted of Having Urinated on Holy Office Building – Not Once But Twice!”, 2025. 7. 22. (접속일 : 2026. 5. 1.) 참조. [본문으로]
- Novus Ordo Watch, “The Vatican II Diaries of Mgr. Joseph Clifford Fenton”, 2017. 7. 7. (접속일 : 2026. 5. 1.) 참조. [본문으로]
- Second Vatican Council, Dogmatic Constitution on the Church Lumen Gentium (November 21, 1964), #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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